고려인 연해주 민족학교 설립배경
- 고려인은 200여 곳 이상의 민족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반일교육의 근거지로 삼았음
- 1938년 고려인은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이주와 민족교육을
금지 당했으며, 사실상 모든 기반이 붕괴됨
- 소련의 붕괴와 개방화 이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고려인들은 1860년대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연해주로 이주하였던 조선인들을 시초로 하는 연해주와 구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은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개척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한국의 독립운동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
본론
1. 과거의 고려인
1.1 러시아 극동으로의 이주사
1.1.1. 러일전쟁 이전
한인이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역사는 1860년대 초에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문서상의 시작이고, 사실상 연해주에서 한인들이 최초로 살게 된 시점은 1860년 북경 조약이 있기 훨
1. 기존연구의 한계
(1) 러시아 한인 이주의 역사가 140 주년을 넘었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의 고려인에
대한 인식은 부재한 상황.
(2) 다양한 연구가 나왔지만, 심층적인 연구라기 보다는 연해주와 사할린을 중심
으로 한 나열식이 주를 이루고 있음.
2. 연구의 필요성
(1) 통합과 화합의
1. 카자흐스탄의 한인(韓人)사회의 구성
카자흐스탄의 한인사회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정착한 동포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고려인(高麗人) 사회이고 두 번째는 근래에 들어 한국에서 이민을 간 재외 교민 사회이다.
카자흐스탄에는 약 1
연해주에 집중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국의 정치・경제적 불행으로 해외로 이주하여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거주국에서 정착하여 살았으나 구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다른 지역의 동포들과 달리 많은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나 소연방 해체가 본격화한 1990년대 초반부터 중앙아
고려하지 않고 북한의 임의의 부탁 가능성 정도에 따른 만족으로 귀착된다”. 여기에 무역경제관계에 있어서의 오산과 무역 불균형, 상호유리 원칙의 간과가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90년대 러북 무역경제관계에 계속 남아있었음을, 즉 양국의 경제 협력은 과거의 “오명”으로부터 아직은 완전히 벗어
1-1. 중앙아시아 한인
현재 고려인은 약 50만명이며 중앙아시아·러시아·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전역에 살고 있다. 이는 해외 한인 중 미국(215만명) 중국(214만명) 일본(63만명)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고려인이 가장 많은 곳은 중앙아시아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3국에
옛 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취득을 돕는 특별법이 2009년 5월 28일 국회를 통과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이범관 의원 - “고려인에 대해 외교적·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처음 마련됐다”
- 특별법 내용
무국적 고려인 지원을 위한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는 조선조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였다. 나아가 대한제국 시대 일제 침략과 그를 이은 식민지 지배시기에는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중심무대가 된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사에서 큰 줄기를